잊어버리기 전에 올려놔야죠.
슬슬 퇴근준비를하는데 김*석 조합원이 술이 거나해서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술 한잔 하셨네? 오늘은 일 안나가셨나봐요?"
"아니, 내가 출자하겠다는데 간호사들이 못하게 해!"
"오늘은 술 드셨으니까 들어가셨다가 몸 좋아지시면 오시라는 거겠지요"
데스크 쪽에서 시끌시끌하더니 아마도 그런 이야기였나 보다.
오늘은 많이 드신건 아닌듯 하지만..
60대이시지만 노동일을 하시며 품을 받는 날이면 몇 만원씩 증좌하시곤 하던 동네 조합원이신데,
비오는 날, 일 없는 날은 술이 거나해져서 내게 괜한 화풀이도 가끔 하시곤 하고,
직원들에게 군것질거리도 자주 사놓고 가시곤 한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생각되는, 갑작스럽게 반복되어 나타나는 '실어증'때문에 처음 병원에 오셨던 분이시다.
내가 크게 도움되어 드린 일은 없지만, 갑자기 몇일에서 몇주씩 말을 못하는 일이 수시로 생기면 나와 수담을 나누면서 정이 들었던 분이다.
"내가 지금 농협에 가서 돈찾아 올게 기다려? 그리고 할 말 있어"
"아유~ 괜찮아요. 오늘은 이만 들어가세요.."
"아냐 기다려 내가 금방 은행 갔다 올게"
한사코 기다리라고 당부 하시곤 밖으로 휑 나가셨다.
무슨 투정이라도 하고프셨나보다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진료실 안팎을 서성이며 기다리는데 한 10분이 지나도 안나타나신다.
은행갔다가 마저 한 잔 더 하시려고 어디 눌러 앉으셨으려니 하고, 7시가 다 되어서 퇴근준비를 하려고 컴퓨터를 끄는데 나타나셨다.
봉투를 꺼내더니 10만원짜리 수표를 내미신다.
"아니 진짜 출자예요? 아이구, 100만원짜린줄 알았네...히히"
"그려... 또 할게. 그리고...... 그동안 우리 지역을 위해서 많이 애쓰신거 알고 있고...조금 더 힘써달라고..."
약간은 부끄러운듯 진지한 표정으로 툭 던져진 말씀을 듣는 순간, 수표를 받아든 두 손을 꼼짝할 수 없었다.
코 끝이 찡하다. 그리고 미안하고 죄송하고...
"아니, 그런 말씀인 줄 모르고...정말 고맙습니다"
"진짜여.. 그동안도 좋은일 많이 하고 있는거 잘 알고 있지만... 나도 힘을 보태야지"
저절로 고개가 무릎까지 내려가도록 숙여진다. 이런 분이 100인 민들레 되셔야지...
"김*석님, 내친 김에 이번에 둔산민들레를 위해 조직하는 100인 민들레가 되어주세요"
"어, 그랴그랴"
진료실 밖으로 따라나가면서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는 직원들 앞에 수표를 전하며 줄자영수증처리 하는 동안 다시 이야기 했다.
"할 말 있다고 하시더니, 뭐라고 하신 줄 아세요? 지역을 위해 애쓰셨다고, 더 힘써 달라고 출자하시는거래요, 아, 정말 감동먹었어요"
"그리고 100만원까지 채워 100인 민들레가 되어주신대요"
부끄러우신지 손사래를 치며 출자영수증을 받자마자 '갈게요' 하시며 서둘러 병원을 나서신다.
이렇게 한사람 한사람의 새로운 역사가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