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 의사, 돌연 냉장고 열고 혼내는데…"살것 같다"는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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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민들레의원 원장은 "방문 진료를 나가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스토리플래너). 박 원장은 "가족 표정은 어떤지, 누가 오가는지, 벽에 무엇이 걸렸는지, 바닥이 깨끗한지, 문턱이 얼마나 높고 욕실 바닥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약은 제대로 보관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등을 본다"며 "환자를 통합적 인간으로 보게 되고, 환자의 삶이 눈에 들어오면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말한다. 소위 포괄적·통합적 치료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왕진 의사는 때로는 사회복지사가 된다. 박 원장은 당뇨가 조절되지 않는 노인이 넘어져 꼼짝 못 한다는 얘기를 듣고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경제난으로 식사를 제대로 못 했고, 식사를 못 하니 저혈당이 걱정돼 약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박 원장이 "왜 그런 얘기를 안 했느냐"고 물었더니 "바쁘신데, 어떻게 하냐"며 얼버무렸다. 박 원장은 도시락 서비스를 연결하고 20가지 넘는 약을 정리해줬다.
사진설명: 고경심 서울36의원 원장(오른쪽)과 이정선 간호실장(왼쪽)이 8일 오후 서울 혜화동의 한 가정을 방문해 상담 후 진료를 보고 있다. 강정현 기자
유상미 인천평화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사회복지사는 방문 의료 코디네이터다. 유 복지사는 "뇌경색·뇌출혈로 인해 장애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방문 의료의 주 대상이지만 집에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도 방문 의료가 필요하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아 피부질환이 있고, 정신질환도 있다"고 말했다. 27년 발달장애인 아들을 돌봐온 어머니 정 모 씨는 "아들이 병원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탓에 여태까지 소변검사·혈액검사 같은 기본 검사조차 해본 적이 없다"며 "원시시대에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씨는 "꼭 어딘가 아픈 때가 아니더라도 집으로 의료인이 찾아와 서로 얼굴도 익히고 건강 관리도 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왕진의 손길이 절실한 재택환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박 원장은 "방문 진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주변에 의사를 필요로 하는 아픈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됐다"고 말한다. 소변줄 하나를 바꾸기 위해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을 가족이 매달려 내려야 하는 척수장애인,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든 근육병 환자, 병원에 가기 싫다고 보호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심한 발달장애인…. 그러나 지난해 138개 동네 의원이 재택환자 4195명을 왕진했을 뿐이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이에스더·황수연·어환희·이우림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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