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민들레 의료사협의 지역사회의료센터장
안녕하세요. 발로 뛰는 동네 의사 야옹 선생입니다. 저는 지금 지역사회에서 아픈 분들을 직접 찾아가는 왕진과 방문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놈의 코로나 19' 때문에 바뀐 여러 상황들을 얘기해 보려 합니다.
올해 3월 초부터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제가 일하는 민들레 의료사협에서는 의료진과 환자를 서로 보호하기 위한 방역수칙을 만들어 지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의료 기관 진입을 제한하고, 마스크를 내리고 목구멍을 보는 대신 목을 만지는 촉진을 하고, 환자 접촉 전후에 반드시 손을 씻는 등입니다.
특히 지역사회에 확진자가 늘어날 때는 가능하면 신체접촉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혈압 체크도 청진기를 이용해서 수동으로 측정하지 않고 밖에서 자동혈압계로 측정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비접촉 진료를 하면서 환자들의 불만도 생겼습니다.
며칠 전 단골 환자가 속쓰림과 신물 오름으로 내원했는데, 증상도 전형적이고 최근 내시경 소견상 식도염이 있어 말씀만 듣고 약물 처방을 했더니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선생님, 오늘은 청진기도 한 번 안 대 주시네요?"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며,
'아차차, 내가 지금 나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진료원칙 중 하나가 아픈 곳을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보자는 것인데요. 코로나19 때문에 스스로 그 원칙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물론 환자의 증상이 워낙 전형적이라 제가 배 소리를 듣거나 안 듣거나 처방에는 크게 차이가 없었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아프다고 한 곳을 보지도 만져보지도 않은 의사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를 알면서도 아직 어떻게 해야 코로나 19 바이러스로부터 서로를 지키면서 필요한 원칙도 지킬 수 있는지 고민이 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또 하나의 현상은 사람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한 달 전쯤 평소 심장이 불편한데도 항상 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어르신 한 분이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병원에 오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웃음을 잃지 않는 분이라 의아하여 표정이 어두운 이유를 여쭈었더니 어떤 일로 이웃과 문제가 생겨 관리실에 해결을 부탁했더니 관리자가 별 것 아닌 일로 그런다며 짜증을 내어 너무 화가 났다는 것입니다. 평소 점잖던 사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한참 분개하셔서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르신, 범인은 따로 있어요. 바로 코로나 때문에 그런 거예요. 다들 스트레스가 목까지 차올라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을 가만히 들으시던 어르신이 갑자기 호탕하게 웃으시더니
"하하하~원장님, 맞네요, 맞아. 돌아보니 나도 코로나 때문에 내 마음을 잡지 못하고 화를 내보였네요. 코로나가 문제지 사람이 문제인가~."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살림 의원 추혜인 선생님의 책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에 보면 '이유만 알아도 견딜 수 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어떤 두통 환자가 10년 전 교통사고 이후부터 시작된 두통으로 이런저런 검사나 치료를 다 해봤으나 호전도 없고, 이유도 몰라 답답해하다가 추 선생님을 찾아왔는데, 자세히 보니 교통사고 시에 두피 아래쪽 조직이 엉겨 붙어 흉터가 생겼고 그것 때문에 두통이 생긴 것이 아닐까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환자는 이후에 아픈 정도는 비슷하지만 견디기가 수월해지고 기분도 좋아졌다고, 아마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렇게 환자의 아픔에 공감을 해주고 이유를 찾아내 이름을 붙여주기만 해도 환자가 스스로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죠.
저도 요즘에 이유 없는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찾아온 분들께 범인을 넌지시 알려드립니다. '그 놈의 코로나'가 문제라고요.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도 환자들이 잘 털어내고 좋아집니다. 지금의 코로나19 상황은 한 사람에게만 닥친 것이 아니고 전인류의 문제니까요. 그러니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견디고 있구나, 저 사람들도 힘들겠구나 하고 이해가 되는 것이죠.
코로나19 때문에 고립 아닌 고립이 된 분들도 있습니다.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이 문을 닫고 모든 프로그램이 중단되거나 연기되고, 자식들이 연로하신 부모님 걱정에 집에서 꼼짝 말고 계시라고 하면서, 그리고 각종 기저질환으로 인해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이면서 생긴 상황입니다. 이렇게 집에만 계셨던 분들은 대부분 배가 나오고 살이 찝니다. 체중이 늘고 근육이 빠지니 관절이 더 안 좋아지고, 당뇨나 혈압도 조절이 안 됩니다. 집에만 있으니 자꾸 간식을 해서 치아도 약해지고, 말할 상대가 없어져 우울증이 생기고, 줄여가던 담배나 술도 늘어납니다. 건강을 위해 택한 고립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 복지관에 문을 닫자 어르신들이 아파트 공원에 모여앉아 계심. ⓒ박지영
▲ 홀로 집에 계신 어르신. ⓒ박지영
단 1년 전만 해도 우리는 이런 상황에 닥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지요. 가까운 미래에 기술이 인간을 뛰어넘는 소위 '특이점'이 와서 더이상 노화나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유토피아를 상상했던 미래학자들도 있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인류가 쌓아 올린 지식의 산은 높으나 인간은 여전히 약한 존재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코로나19가 이런 관계를 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 코로나19가 인간 관계의 네트워크를 깨뜨린다. ⓒ박지영
비대면, 비접촉이 최선이 되어버린 시대지만 여전히 접촉과 대면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자가 편한 사람들도 있지만 혼자가 되면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리거나 나이 들거나, 약하고 아플수록 그렇습니다.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들과 어르신들, 정신적, 사회적으로 고립된 우리 주변의 약자들에게 코로나 19 상황은 더 힘듭니다. 얼마 전 뉴스에 나온 지적 장애인 모녀의 죽음이 떠오릅니다. 그분들이 만약 한 군데라도 연락하여 본인들의 상황을 알릴 수 있었다면, 혹은 정기적으로 찾아가 상황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와 연결이 끊어진 것이 그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의료서비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시적으로 전화처방도 하고 있고,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위한 디지털 의료기기들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비대면 의료도 한시적으로 필요하지만 우리는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관계 속에 살아야 합니다. 촘촘했던 관계망이 성겨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줄어들고, 그러면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돌봄을 주는 사람들도 힘듭니다. 방역원칙을 지키면서 건강한 관계도 지켜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일단은 저부터 지역사회 약자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찾아가 점과 점을 연결하여 공동체의 안전 그물망을 만들어 내야겠습니다. 이런 시대에 왕진과 방문 진료가 가능해서 다행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지치고 힘들더라도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라고 핑계라도 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돌아보는 관계의 끈을 놓지 말았으면 합니다.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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