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목요일...
오늘은 목요일의 아가씨가 오는 날입니다.
한남대 학생인데 풋풋한 스무 살, 청년이 매주 목요일에 자원활동을 한다고 하네요. 인증샷은 아직..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뭔가를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합니다.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입니다. ㅎㅎㅎ
출근하는 길, 라디오에서는 태국에 80일째 비가 내려서 우리나라 면적의 1.5배에 해당하는 땅이 잠겼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컴퓨터 하드웨어 중요 부품 생산 공장 때문에 막대한 차질이 있을 거라는, 그 와중에 주변 다른 나라들은 일본 전자와 자동차 부품 공장 유치를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소식도 함께였지요. 자본의 냉정한 본질을 엿보는 것 같았습니다. 물난리로 어려움을 겪을 이웃을 생각하기 보다 그 불행을 자신들의 호기로 삼아 돈을 벌고자 하는 자본의 얼굴....
칠레에서는 교육 개혁을 향한 목소리와 시위가 점점 커지고, 그리스에서는 노동시장의 축소에 저항하는 사람들, 월가에서도 99%의 삶을 담아 1%를 향해 점령하라! 금융자본의 목을 조여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주말에 우리나라 여의도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있었다고 하구요..
혹자는 최근의 세계적인 흐름을 보고 68 혁명을 떠올린다고도 합니다. SNS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온갖 억눌리고 차별받고 부당한 것에 대한 저항, 반대, 정의를 향한 다양한 외침...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오전에는 다음 주 월요일에 열리는 서구 마을 모임을 알리는 연락을 하기로 했습니다.
260여명 조합원 명단을 놓고 전화기를 돌렸습니다.
"안녕하세요? 민들레의료생협입니다.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 " 등으로 시작해서 빠른 속도로 마을모임 일정과 제2진료소 개원 예정과 구강 상담도 가능하다는 말을 한꺼번에 쏟아냅니다. 점점 말이 빨라지더군요...ㅎ
제일 당황한 질문은 "아, 그러세요? 근데 누구세요?"였지요. 순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대의원 아무개입니다."하고 대답을 했지요.
아마도 익숙한 직원들의 목소리가 아니어서 그랬나 봅니다.
명단의 1/4은 전화번호가 없거나 바뀌었고(010 이전 번호가 바뀐 경우가 많은데 서비스로 연결해 주는 1~2년 동안 한번도 연락하지 않아서 결번인 번호가 꽤 많았습니다.), 1/3은 전화를 받지 않고, 1/5 정도는 그저 돈만 내겠으니 따로 연락하지 말라고 하고, 초창기 조합원들 등 1/7 정도는 많이 멀어졌노라고 하고, 최근 가입하신 조합원들을 포함해서 대략 1/5 정도는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면 참여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모임이 저녁 시간이어서 주부들, 특히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에는 많이 부담스러워들 하셨습니다. 오전 혹은 낮모임을 열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서구의 특성상 지역이 너무 넓어서 가수원동이나 도마동 등등에서 월평동으로 모임에 오시기에는 무리가 있는 느낌입니다.
대의원이나 이사들이 계시면 구역별로 마을모임을 나누어서 진행하면 좋을 듯 합니다.
상당수는 아마도 이런 전화를 처음 받는 것 같더군요. 문자나 우편물 말고, 직접 전화를 하고 대화를 하는 것은 얼굴을 맞대는 것에는 비할 바 못되지만 상당히 고마움을 느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소중한 한 분 한 분인데 그 마음이 전해지고, 서로 주고 받는 과정이 전화로라도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대의원으로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전화 통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하면 좋겠습니다.
당번을 정해서 <조합원과 대화하는 날>에 정기적으로 대의원과 이사들이 나와서 전화 모니터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역구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돌아 가면서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조합원들이 민들레의 전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다소 전화비가 많이 들겠지만 더 많은 상승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일상적인 이야기, 조합 이야기, 병원 이야기, 아쉽고 안타까운 이야기, 개선할 점에 대한 이야기 등등
물론 점심과 커피는 제공해 주시고..ㅎㅎ
조합원 명부에서 이사 가거나 연락처가 바뀌거나 특이 사항이 있거나 하는 것들을 수정하고 정리하고, 민원이 제기된 것을 정리해서 넘겨 주는 작업만 자원활동으로 해도 엄청난 일이 덜어질 것입니다. 서너 명의 직원들이 감당하기에는 다른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대단히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꼭 도입해서 시행했으면 합니다.
일단 저는 한 달에 하루 나와서 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5~60통 정도 할 수 있을테니 대략 한 달이면 2천여 조합원 세대에게 모두 전화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1시 넘어서 김영신, 유미조 조합원이 아이들 건강검진을 마치고 귤을 들고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서구 마을모임 얘기도 했습니다. 김영신 조합원은 총회 때 연잎밥 나눠 주며 "분리수거해 주세요, 젓가락과 컵은 씻어다 주세요" 하면서 어려운 소리를 하느라 애썼습니다.
김밥 싸서 나들이 간다는 다른 청년들을 제쳐 놓고 렛츠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두 그릇 제가 미리 통보하지 않아서 안 그래도 회의 때문에 가득한 렛츠 식구들 틈에서 부족하지만 맛있게 밥을 먹었습니다. 급당황한 자작이 푸짐하게 감자 반찬을 해 주어서 배를 채울 수 있었지요... 감사드려요.. 커피도 얻어 마시고, 수다 떨다가 2시 8분이 되어 후다닥 민들레로 올라왔습니다.
다시 전화를 돌리는데 맛있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면서 조애영 쌤이 식빵을 구워주시네요. 통밀이어서 담백하고 쫄깃했습니다.
자주 구워 주세요...ㅎㅎ
어느 정도 전화 연락 작업이 끝나서 마무리를 하고 퇴근했습니다.
역시 별달리 한 일이 없는데 점심 먹고 나면 금방 퇴근 시간입니다.
얼굴을 모르는 조합원들과 통화하는 일이 쉽진 않지만 목소리에서 묻어 나는 민들레 대한 애정과 관심과 서운함과 낯설음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조직 활동, 조합원 활동은 좀 더 체계적으로 짜여지고 공유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무실은 그런 활동을 지원하고 도와 주는 일을 해야 하는데 정작 조직 활동을 하는 주체나 흐름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게 아닐까... 앉아서 고민하고 상상하는 것의 한계랄까... 뭐 그런 생각들을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