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시어요. 겨우나무 가지위에도 새싹이 움터 나오고 따스한 햇살아래 봄바람이 살랑 살랑 불어 오시네요. 으능정이 거리에는 새학기를 맞아 교복입은 친구들과 대학교 새내기들이 오후 초저녁부터 와글와글 왁자지껄 하하 호호 어우러져 나오네요. 아마도 봄은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자라남을 잘 보라>고 해서 ‘보옴=봄’이라는 말이 생겨난 거 같아요.
전에 만났던 한 친구가 기억이 나네요. 처음엔 고양이눈이 되어가지고 남들이 쳐다볼 때마다 앙칼지게 욕도 내뱉으면서 거리에 나온 한 소녀였지요. 굴곡이 많은 가정사가 있었고 집을 뛰쳐나와 자신의 진로를 아직은 정하기 어려운 어린 나이에다가 남자는 알아가지고 성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였지요. 급기야 임신을 한 사실을 뒤늦게 알아가지고 몸조심을 하라는 진심어린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담배와 몸을 함부로 다루는 듯하여 걱정이 앞섰는데 아뿔싸 유산이 되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갑자기 사라져서 너무나 당황하여 추운 시내로 찾으려고 12시 넘어 찾으러 다녀보았지요.
기어 기어 다른 친구와의 핸드폰이 연결되면서 바꿔진 목소리를 들어보니 바로 그 친구였지요. 대답은 순하게 미안하게 착한 아이처럼 유산으로 인한 후유증이 염려되어 병원에 가야한다고 절박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그렇게 하겠다고 한 약속만 4번이 넘어 가고 시간은 흘러 염증이 흘러내려 착종되어 위험할 지경으로까지 번질 확률이 높다는 판단이 앞선 지경에 까지 이르렀지요. 그야말로 속이 타고 애가 타서 눈에 보이면 당장에 데려올 것만 같은 분위기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함께 활동하는 분들께 찾아내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이럴 즈음에 다행히 통화가 다시 연결되어 와서 급한 김에 병원에 가게되었는데 상태가 이름도 성도 모르는 낯설은 의사선생님한테 꾸중을 들을 정도로 마구 악화되어 급히 수술을 해야할 지경에 이르렀대요. 수술은 무사히 마쳤고 오후내내 병원에 있다가 또래친구들이 우루루 연락이 되어 오길래 입원치료를 당분간 잘 받으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함께 한 친구들도 잘 보살피겠다는 말을 철썩같이 하여 자리를 피해 주었지요.
병원 문을 나서면서 마음 한켠에는 잘 지내려나? 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설마 몸 상태가 수술을 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고 이정도면 하룻밤을 잘 지내겠지 하며 늦저녁에 한번 더 잠시 들렀다가 다음날 간호하기로 작정을 하고 나선 것이지요. 초저녁에 수술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필요한 물품을 갖어다 달라기에 다른 분에게 부탁을 하여 물건을 건네주었고 다음날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떠먹고 병원에 갔는데 병실은 터엉~비어있고 소지품 하나 남아있지 않았어요. 거기다가 같은 병실의 환자의 돈도 사라졌다고 하네요. 이런 이런
아, 봄 오시는 길목에서 저는 찬 바람이 가슴속으로 매몰차게 들어왔지요. 심한 독감에 걸려 몇날 며칠을 생고생을 하였고 머릿속은 여전히 그 소녀친구의 얼굴이 떠올랐지요.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고, 할 수 없는 일은 어디까지인가? 일의 문제인가 관심의 문제인가? 나는 과연 이 일을 잘해낼 수 있을까 할수 없을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있었지요.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서 하루의 생활을 맞이하는 아침해를 올려다보며 길을 걷지만 여전히 그 길을 걸어가는 것만 같아요.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초침이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은 죽은 나침반이라는 위안을 가슴에 안고서.
그 작은 나침반 바늘의 떨림이 없다면...그 소중한 생명의 끝자락을 찾으려고 몸부림 치며 떨리는 빨간 마음이 없다면...봄은 오늘도 오지 못했을 것이지요. 봄 바람을 타고 오시는 그 소녀의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지금 봄이 오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