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날 성공회 성당(홍도육교 부근)에 갔다가
부사동으로 건너갔어요
한쪽 손엔 바지3벌 수선할 것을 가지고
부모님이 계시는 일방(=일하는 방. 옷 수선집)으로 갔지요.
아버님은 1928년생으로 청주가 고향이고
17살에 대전에 와서 봉제일을 하다가 서울 청계천에 가서
봉제일을 하고 서울 신기술을 배워서
24살에 대전으로 와서 가장 잘나가는 한국양복점에 취직하고
50여세쯤인가 집에서 봉제일감을 납품하는 일을 하셨지요.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때 납품용 양복을 자전거에 싣고
대흥동에 납품을 하기도 하였고요.
지금도 입고 다니는 양복은 딱 두벌인데
한벌은 나눔의집 선생님들이 선물을 하여 준 것이고
또 한벌은 아버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것이지요.
저는 지금까지 거의 겉옷을 사 본적이 없는거 같아요.
그래서 아버님의 사랑을 늘 입고 다니지요, 히이
지금은 83세이고 비록 돋보기 안경을 끼고 사시지만
바늘에 실을 낄 때는 거의 쑥! 들어가는 장인수준이지요ㅋㅋ
어머님은 1931년생으로 금산아가씨 출신ㅎㅎ
24살에 대전으로 시집을 와서
셋방살이를 하다가 어렵사리 푼돈을 모아
당시 부사동 4거리에서 보문산쪽으로 100M 쯤
한옥기와집 60여평을 없는 살림에 무리하여 장만하고
5남매를 별탈없이 잘 키워내신
그야말로 일제시대와 70년대 유신정권을 견디어 내신
우리들의 살아계신 어머니의 전형이십니다.
아랫니는 2개만 남아있고 틀니도 흔들거린다는
살아온 것을 소설을 쓴다면 열권도 넘는다는 말씀은 지금도 하시고
아버님 바로 곁에서 아웅다웅 다투시면서도
감기걱정 손님걱정(수선집일) 자식들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요
옛날부터 법륜선원이라는 석교동의 절에 다니시는데
늘 자식들 잘되라는 주문만 외우시고 절을 하시지요.
(절은 절을 많이 한다고 절이 아닐까요?ㅋㅋ)
어제 토요일 잠깐 들러 맛난거 잡수시라고 돈3만을 쥐어주고 왔는데
자식이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그게 걸렸던지
잠시 눈을 감고 누워있다고 깨어보니 오후 5시반이 넘어
일어서려니 대흥동 월산본가로 가서 밥을 먹자고 성화라
택시를 타고 갈비탕을 맛나게 먹고 사시는 인동아파트로 왔지요.
어머니는 치아가 부실하고 허리가 굽어 잘 드시지를 못하는데
국물이 시원한 월산본가 갈비탕은 잘 드시는지라
2인분 15,000원 짜리를 포장하여 들고 나섰더니
방금 잘 먹었는데 또 샀다고 혼내며 뭐라 하시네요ㅎㅎ
술 한잔 덜 먹으면 부모님이 맛난걸 드실 수가 있어요.
인동집에 갔다가 나오는데 택시비 하라고 하시기에
버스타고 가면 된다고 하며 막 나왔더니
아 글쎄 어머니가 50M는 쫓아 나오시네요
밥값은 어제드린 3만원으로 대신 내주시고, 택시값도 주셨는데
도대체 부모님들이 왜 이러시는지요ㅎㅎㅎ
법 없이도 살아가시고 오로지 자식들 걱정에만 여념이 없으신
우리들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오늘 저녘은 정말 맛난 식사를 하였어요
아버님, 어머님! 늘 건강하시고 만수무강 하시옵소서.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1월 소식지글을 급한 김에 날림으로 막보내고 나서 오래동안 제 마음은 너무나 무거웠고
총회자리에서는 차마 얼굴을 들고다니기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이따금씩 일상생활 글로 대신할까 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우리 민들레 식구여러분 사랑합니 D~ay. 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