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주신 밤에 씨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
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
그 여름 어인 광풍
그 여름 어인 광풍
낙엽지듯 가시었나
행복했던 장미인생
비바람에 꺽이니
나는 한떨기 슬픈 민들레야
긴세월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일편단심 민들레는 일편단심 민들레는
떠나지 않으리라
용필이 오빠의 노래다. 어제(10/9) 우리조합 대의원 수련회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민들레 그만 뒀다며?” 뭐라고 대답할지 머뭇거려진다. 그만둔게 아닌데 그만뒀다고 한다. 그렇다고 예전과 같이 일하는 방식은 아니다. 새로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그게 너무 많아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추려서 말해야 할지 갑자기 막막해진다. 그것은 처음 한밭레츠나 민들레의료생협을 시작할 때 간만에 만난 지인들이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심정과도 비슷하다.
이어서 나오는 질문은 이렇다. “어떻게 살라고 그래?” 그것도 대답이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직장으로 스카웃 돼서 가는 것도 아니고 뚜렷하게 어떤 일을 창업하는 것도 아니다. “집에서는 뭐래? 집사람은 괜찮대?” 따라오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 몇 번이고 되물어본 물음이기도 하니까. 아내에게 말했었다. “이제부터 내가 봉사할테니까 당신이 돈 벌어라” 단칼에 싫단다. 대책없는 여자다. 남편이 고정수입이 대폭 삭감되는 사태앞에서 자기는 자기 길을 간단다. 지금까지의 역할분담은 그대로 유지하란다. 뭐, 말해봐야 내 생각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으니까 얼른 포기하고 그에 따라 처신하는 지혜로움일 수도 있겠다.
내가 이른바 먹고사는 문제를 생각할때는 언제나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사막 한가운데 뼈가 앙상한 흑인 아이가 누워있는 모습이다. 그의 눈거풀 주위엔 파리가 더덕 더덕 달라붙어 있는데도 쫒지 않는, 쫒을 기력도 없어보이는 서너살의 아이이다. 그 장면은 역설적이게도 내게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준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걱정하는 먹고사는 문제는 무엇인가? 자기집을 갖는다? 나는 이미 집을 가지고 있다. 3천만원 전세보증금을 빼서 시골마을에 집만 사서 들어왔다. 땅주인인 모성씨 종중에 도지로 연 12만원만 내면 80여평의 전원 단독주택인 것이다. 확트인 집앞의 논과 밭과 산과 호수가 다 우리집 마당이다. 심야전기보일러 난방비는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조금 춥게 살면 된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 나는 이미 충분히 잘 굴러가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 유지가 어려우면 조금 불편하겠지만 버스를 타고 다녀도 된다. 그 다음엔 뭔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아이 한명의 교육비? 우리아이 학교는 상수원보호구역에 위치한 시골 작은학교라 교육비가 거의 안든다. 그러면서도 도심지 학원에서 하는 다양한 방과후 사교육 프로그램을 학교안에 들이고 있다. 그것도 무료로. 또 있나? 병에 걸리거나 사고났을 때를 대비한 보험료? 그래 그건 문제일 수 있다. 내가 준비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쳐야 할테니까. 그래서 협동조합 방식으로 보험을 다루는 공제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어느정도 돈이 들것이다. 그 다음은? 인터넷이나 전화, 핸드폰 사용료? 그래 이것은 확실히 만만치 않은 비용이긴하다. 그런정도는 벌어야 한다. 연극이나 영화를 보고 외식하는 문화생활비? 글세 그것을 조금 줄인다고 해서, 혹은 안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지금도 이 분야에 지출하는 돈은 거의 없으니까. 나의 개인 용돈의 측면에서 보자면 술값과 담배값이다. 집 식구들이 밥을 굶는데도 술먹고 담배필 정도의 뻔뻔함은 없으니 그거야 끊으면 그만이다. 우리마을 슈퍼 막걸리 한대포가 천원이다. 두 대포만 먹으면 알딸딸해진다. 안주는 아주머니가 그냥 준다. 2천원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그동안에 왜 돈을 모으지 못했을까? 겨우 겨우 수지만 맞추는 생활을 한 것은 왜 그럴까? 돈이 있으니까 그에 맞추어 생활한 것이다. 많은 벌이는 아니었지만 1년이면 내 연봉의 15% 정도가 단체 후원금이나 기부금으로 나갔다. 돈이 없으면 다시 그에 맞추어 생활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그 아이와 같은 일은 벌어지기 어렵다. 우리나라 정부는 사람이 굶어죽게 그냥 두지는 않을 정도는 되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걱정하는 것일까?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걱정하는 것일까?
그 걱정엔 나를 아껴주는 마음이 들어있음을 안다. 고맙다. 그래서 특별히 뭘 걱정하냐고 묻지 않고 ‘대책을 세워나가야지요.’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나의 걱정은 다른 것에 있다. 나를 걱정하는 그 마음이 걱정이다. 새로운 세상을 원하면서도 그 세상을 위해 온몸을 던지지 못하고 바꾸어야 할 세상에 무기력하게 적응하는 삶을 살기위해 돈벌이에 매달려야 하는 우리네 삶이 걱정이다. 한번뿐인 인생, 너무 안타깝다. 머리까지 깎았던 사람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기 바란다.
다만 나는 내가 먹고사는 문제와는 다르게 돈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의 양심, 나의 밝고 좋은 마음의 한편이 바라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어둡고 나쁜 마음도 물론 있다. 그것은 내가 내 안에 숨어버리면서 꿈을 포기하는 마음이다. 오히려 그것은 별로 돈이 안든다. 꿈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 앞으로 돈 달라는 이야기 많이 들을 것이다. 뭐 긴 설명 들으려고 하지 말고 나를 보면 그냥 여유만큼, 마음만큼 돈을 주면 좋겠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민들레의료생협을 그만 두는 것이 아니다. 가족은 떠난다고 떠날 수 없는 것과 같다. 정해진 일과 직책을 맡았고 어느정도 보수도 받기로 되어있다. 사실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합의 어느 모임, 어느 행사에 가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예의 나의 얼굴을 볼 것이고 뭔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1.5일 상근을 약속했다. 그런데 그 이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여전히 대전에서 그간 살아왔던 것을 밑천으로 그 이웃들, 그 친구들과 뭔가 재미난 일을 모색할텐데 그것은 역시 조합의 일이기도 할테니까. 주민운동,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회적 기업, 호혜시장 등 사회적 경제 운동을 보다 전면적으로 하기 위해 나선다. 그런데 그 일을 우리 조합원들과 하지 누구랑 하겠는가? 언제 어디서든 조합이 더욱 자라나기 위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조합과 나를, 나의 인생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것이 잘 안된다. 그게 문제일 수 있겠지만 그냥 그렇게 살려고 한다. 여럿이 하는 일이라 그것 때문에 불편한 점이 생긴다면 잠깐 자리를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번처럼 말이다.
조합이 더욱 유용하게 나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우리 민들레의료생협의 식구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설레이지 않는가? 회오리, 김성훈이 보다 자유롭게 지꼴리는데로 꿈을 향해 달린다고 하면! 끼고 싶지 않을까?
부족한 사람에게 이런 좋은 조건과 기회를 주신 조합과 조합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결초보은!
추신.1 10월 12~16일 한국의료생협연대 소속 회원생협 조합원 11명과 일본 미나미의료생협을 다녀오고 21일까지는 일본 커뮤니티 비즈니스 중간지원조직을 살펴본 후에 돌아온다. 조합에서는 교육담당 상무이사의 역할을 맡기로 되어 있다. 살고있는 마을에서 호숫가마을품앗이사업단이 자립하도록 돕는 일을 하면서 마을에 본부, 혹은 놀이터를 하나 만들고자 한다. 장소는 물색중이다. 다만 기조는 <네 멋대로 해라>, <신나게 놀기> 이다. 이것만큼 이 우울한 세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들이 있을까? 새로운 세계의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그런데 다만 혼자서 놀기는 싫다는 것. 같이 놀 동무를 찾는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여기 여기 붙어라~
2. 별명을 바꾸었다. <회오리>가 아니다. <해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