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의료영리화 문제가 전 국민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요즘, <오마이뉴스>와 한국의료협동조합은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의 공공성을 위한 '우리동네 주치의' 의료협동조합의 오늘과 내일의 모습을 함께 짚어 봅니다. [편집자말] |
의대 본과 4학년 과목 중에 지역사회의학이라는 과목이 있다. 말 그대로 지역사회의 의료에 관하여 실습하는 것인데, 여러 프로그램 중에 의료사회협동조합(아래 의료사협) 탐방에 참여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함께걸음의료사협에 다녀왔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나라 의료 체계함께걸음은 지역 중심 재활과 자살 예방을 주 사업으로 하고 있었다. 학교 수업만 들어서는 의료사협이라는 단어, 개념에 대해 알기가 사실 힘들다. 학교 수업은 주로 질병에 관해서 이뤄지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어떤지 배우는 시간 자체는 적다. 그러니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는 의료사협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적은 건 당연하다.
운좋게도 나는 학교 동아리를 통해 의료사협에서 일하는 가정의학과 선생님을 만난 적 있고, 그때 의료사협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일본의 미나미 의료생협을 소개하셨다. 미나미 의료생협은 역사가 50년 이상되었고 3차 병원까지 가지고 있는 등 유서가 매우 깊고 규모도 매우 큰 의료생협이다. 아직까지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다.
당시 강의가 끝나고 내가 생각했던 것은, 국민 일인당 의료비가 폭등하면서 의료 접근이 취약한 계층이 늘어나는 지금, 의료사협이 의료비 폭등을 막으면서 의료 접근이 취약한 계층에게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함께살림 의료사협 탐방은 내가 강의로만 들었던 의료사협을 직접 방문할 수 있었던 점에서 뜻 깊었다. 함께걸음에서 하는 두 가지 주 사업 중 지역중심재활산업이란 지역이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지역주민, 지역단체들과 함께 교육, 복지, 환경, 건강에 관한 다양한 사업을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자살예방사업은 자살률이 높은 노원구 지역에서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시행하는 사업이다. 독거노인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그분들이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여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여러 사람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돈을 모아서 의료사협을 만들고 의료기관을 세운다는 것은 말이 쉽지 사실은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원 모두가 공통적으로 의료기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고, 그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들은 과잉진료를 하지 않고 자신의 1차 주치의로서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라는 기대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의료사협의 의사는 책임감을 가지고 더 친절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의료 환경을 만들어 나간다. 또한 일반 월급제 의사나 3차 의료기관의 의사처럼 환자를 하루에 몇 명 이상 봐야 수지가 맞으니, 몇 분 이내 진료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다. 또 마을 주민들이 조합원이기 때문에 마을의 1차 주치의로서 주민들의 총체적인 건강 관리를 돕는다.
환자들한테 돈 받으면서 환대받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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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생협 의사들은 마을 주민들이 조합원이기 때문에 마을의 1차 주치의로서 주민들의 총체적인 건강 관리를 돕는다. |
ⓒ 한국의료협동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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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의료생협의 한의원 원장선생님인 이상재 원장선생님과의 대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다른 한의원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다른 병원은 페이닥터로 들어간다고 해서 환대 받는 것이 없는데, 여기서는 조합원들의 돈을 받으면서 환대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주치의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임이 대단한 것이라 판단된다. 조합원들의 존중과 기대를 받으면서 마을 주민들의 1차 주치의로 살면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한 분과 언니·동생 사이인 할머니 두 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마침 이웃집 말동무 할머니께서 오셔서 막걸리를 한 잔 하고 계셨다. 할아버지께 자식들에 관해 여쭈었더니, 자식은 있는데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연락이 오지도 않기 때문에 할아버지 자신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버이날 전날이었는데 가슴이 아팠다. 이웃과의 친분이 없었더라면 정말 쓸쓸하고 외로우셨을 것 같다. 의료사협 같은 단체가 이런 독거노인 분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면 고독사의 비율이 많이 줄지 않을까 싶다. 할머니 두 분이 같이 사는 집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허리가 매우 안 좋아서 거동이 불편하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
국가 지원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함께걸음 의료사협처럼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일일이 체크를 해서 조달해드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현장탐방을 다녀왔던 곳은 이웃들간의 친목이 어느 정도 있었던 곳 같은데, 그러한 친목이 고독사를 막고 자살의 비율을 낮출 것이라 기대된다.
대형병원으로 환자는 몰리는데 매년 적자,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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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신촌세브란스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및 의사들이 회진을 돌고 있다. |
ⓒ 유성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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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탐방으로 의료사협이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또한 마을 공동체를 이루어 1차 주치의 제도를 통해 현재 3차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는 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마을 주민들이 3차 병원에 가기 전에 경한 질병은 주치의에게 진료를 받고 만약에 1차 병원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상세하고 친절하게 적힌 소견서를 가지고 2, 3차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된다.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문제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모든 사람들이 조금만 아파도 3차 병원으로 몰린다는 것이다. 빅5병원이 그 현상으로 생긴 것이다. 그런데도 낮은 수가로 인해 대다수 3차 병원은 매년 적자를 내고 있다. 이러한 기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의료사협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환영해주는 환자들, 충격이었다" [인터뷰] 이상재 함께걸음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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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걸음한의원 이상재 원장 |
ⓒ 함께걸음한의원 |
| - 로컬(개원가)에 있다가 오셨는데, 진료환경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다른 병원에서 일할 때는 특별히 환영받을 일이 없었는데, 여기 와서 환자들로부터 굉장히 환영받았던 것이 새로운 충격이었다. 개인 한의원에서 일할 때 환자와의 기 싸움이 굉장하다. 환자는 의사에게 홀려서 필요 없는 걸 권유받지 않을까 의심하고, 의사는 환자를 잘 구슬려서 우리 병원에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서로를 살피는 기싸움이 있다. 그런데 여기는 환자가 의사를 믿고 오니까, 기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병원경영부담이 있긴 하지만, 환자 상태에 따라서 필요한 진료를 중심으로 하게 된다."
- 병원 수익 창출 부담감에 대해 예전보다는 자유로워졌다고 하셨다. "어려운 질문이다. 아무리 비영리라고 하지만 병원경영이 어려우면 조금 권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나 어쨌든 병원의 목적은 수익을 많이 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의사에게도 상대적으로 '수익이 적으니 얼마를 올리시오'라는 경영 압박이 심하지는 않다."
- 예방사업하면서 동네어르신들과 운동도 하는 등 건강 활동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분들이 조합의 건강활동과 연계가 잘 되고 있나? 아니면 별개인가? "그게 과제다. 흔히 의료협동조합을 이용하고 참여하는 사람은 젊고 활동적이고 지역사회에 대한 의욕이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 병원 이용자는 동네어르신, 주부들이 많다. 이런 병원 이용자들을 활동조합원으로 만드는 것이 협동조합의 일인데, 참여시킬 수 있는 우리의 역량이 부족하다. 침도 맞고 진료받던 할머니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기도 한다."
- 환자를 자주 보다 보면 동네에 얼굴도 알려지게 될 텐데 어려움은 없나? "길 가다가 침 뱉는 등 나쁜 짓 못하게 된다. 노원역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인사를 몇 번씩 하게 된다. 다른 의료협동조합의 의사는 동네에 오래 사셔서 장 보러 갈 때 아는 사람들과 수다도 나누고 동네의사로 살고 있다. 저는 이 동네에서 살고 있지 않지만, 동네 조합행사나 체육대회에 나가 이야기 나누다 보니, 병원에 와서 의사에게 아픈 걸 묻는 게 그렇게 편한 게 아니구나를 알게 되었다.
학생들은 의대생이고 주변에 의사도 있고 해서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프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을 뒤져보거나 하지, 의사에게 묻는 일이 쉽지 않다. 정말 너무 아파서 걱정되지 않는 한. 그런데 의료협동조합에서는 일상적으로 의사를 만날 수 있고 페이스북 트위터로도 소통하고 쉽게 물어볼 수 있어서 의사에 대한 접근성이 좋다. 그게 주치의다.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의사를 갖게 된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사실 이런 일을 좋아할 의사도 있고, 피곤해 할 의사도 있다. 동네주민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의사에겐 의료생협이 정말 좋은 직장이다. 관계를 맺고 일상적으로 생활을 나누는 속에 보람이 있다. 제가 본과 4학년 때 한일의대생교류로 일본의료생협 견학을 갔었는데, 감동적인 의사상을 보았다. 나이 많은 60대 의사였는데, 동네사람이 그 의사를 좋아하고, 의사도 보람을 느끼며 조합원들을 좋아했다. 평범하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저도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민들과 어울리는 행복한 의사를 목표로 세웠다."
- 중증질환이나 심하게 아픈 환자의 경우 리퍼(타의료기관 진료의뢰)를 어떻게 하나? "일본의료생협은 3차의료기관까지 운영한다. 한국의료협동조합은 현재 일차의료 위주이다. 여기 한의원에서 상급진료가 필요할 때는 상계동 백병원 등으로 진료의뢰서를 써준다. 우리나라는 일차의료부터 3차의료까지 의료전달체계가 잘 되어 있지 않다. 진료의뢰서를 쓰더라도 대부분 '고진선처 바랍니다'가 끝이다. 저는 진료의뢰서 정성껏 쓰고, 진료받고 오시면 잘 받았는지 물어보고, 상급기관에서 못 물어본 거 있으면 다시 상담해드리곤 한다."
- 생협조합원들이 한의원에 바라는 욕구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시중 현대 의료에서 채워지지 않는 것들을 다 원한다고 보면 된다. 비싸지 않고, 약을 많이 권하지 않고 그러면서 친절하고 잘 고치는 의원 말이다. 환자 입장에서 그렇지 않겠나. 주민들이 돈 모아 만든 병원이니까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정된 자원으로 다 할 수는 없고, 그런 것들을 채워나가려 노력한다.
의료생협 의사에 대한 요구도 많다. 타의료협동조합에서 후배 한의사를 구해달라는 문의들을 받는데, 요구사항들이 많다. 마치 동양전설의 용과 같다. 좋은 거 다 갖다 놔도 실제로는 안 나타나는 용처럼. 의료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싸고 친절하고 깨끗하고 소독도 잘해야 하고 근데 적은 돈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것이 의료생협의 딜레마다. 원하는 게 많고 할 일은 많은데 자원이나 기반이 아직 부족하다. 우리 한의원은 5~6년 되었고, 조합원이 1000명이다. 2000명 되면 경영이 안정될 거라 본다. 매출을 많이 올리는 것도 안 하고, 특별히 녹용도 권하지 않고 있다.
요즘 일차의료 전부가 어렵다. 빚내서 개원했는데 문 닫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의원 개원 5년 생존률이 70%라고 한다. 30%는 문 닫고 딴 데로 가거나 시골로 가거나 한다. 어려운 일차 개원가에서 양심적으로 영리를 취하지 않으면서 마을건강사업을 많이 하려니까 실질적으로 의료협동조합이 어려움이 많다."
- 환자 한 분 보는 시간은 얼마나? "과마다 다를 수 있다. 한의원에서는 정신과 수준은 아니더라도 길게 본다. 머리 아프다고 해도 화장실은 잘 가냐, 생리통은 없느냐, 일상 생활의 현황을 물어본다. 한의원의 특성상 길게 본다. 여기 아프다고 하면 여기만 보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만져보고 물어보니까 좋아한다. 양방의사들도 그렇게 하면 환자들 만족도가 높아진다.
일차진료하는 의사들은 여러가지 환자들이 궁금해 할 만한 것들을 물어봐주고, 아픈 데 만져보고 해야 한다. 검사 위주로 되어가고 있는데, 검사보다 그게 더 본질적인 부분이다. 의료협동조합을 생각하는 의사들은 뭔가 지금은 없지만 과거에 있었을 것만 같은, 정말 동네의사의 전형을 꿈꾸는 사람들이 오면 좋겠다.
진료시간도 짧고 돈만 받으면 남남이 되고, 생활관리 하라고 '운동하고 살빼세요' 하고선 정말 잘하고 있는지도 관심도 없는 단편화된 의사를 넘어서야 한다. 저도 잘 못하고 있어서 이렇게 말하면서 스스로에게 자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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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