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의협의 구호는 이래서 잘못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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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나준식(knajs) | 작성일 | 2014-03-19 | 조회수 | 11014 |
[특별기고]의협의 구호는 이래서 잘못됐다
박형욱의 시국분석 (下) 현재의 총파업 국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의료 총파업 전야에서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 협상이 일단락됐다. 언론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의사들 수가협상권 강화 얻고, 정부는 영리 자회사 허용 챙겨’, ‘의사들에 밀린 정부, 건정심 구조 개편 수용’, 심지어 ‘복지부의 항복, 이래가지고 뭘 한다고’라는 제목까지 보인다. 언론은 의사들이 이겼다고 한다. 그러나 상당수의 의사들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해 얻고자 하는 결과가 이것이었나? 앞으로도 보험재정의 압박은 계속되고 국민은 보험료 인상을 반대할 것이고 정부는 획일적인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터인데,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건정심 위원 25명 중 의협·병협 대표가 3명에서 4명 혹은 많아야 5명으로 늘어난 것에 불과한데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막연한 불안과 혼돈스러운 느낌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 의료체계의 핵심적 문제는 무엇이며 의사들은 어떠한 정치적 구도 속에 놓여 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에 의협이 내건 명분이 한국 의료체계의 핵심적 문제를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해 주었는지 냉정히 돌아보아야 한다. 국민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의료정책이 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이기심이 핵심 아니다 소위 진보적 보건학자들은 한국 의료체계의 핵심적 문제를 의사의 이기심에 의존해 설명해 왔다. 의사가 행위별수가제를 악용하므로 포괄수가제를 도입하고 민간 의료기관을 인수해 공공 의료기관을 확충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의사의 이기심도 아니고 행위별 수가제도 아니다. 그것은 다른 선진국이 고민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의료기술이 초래한 현상들이다. 과거에도 의사의 이기심은 존재했지만 의료비 급증은 문제되지 않았다. 의료기술의 발전은 제공 가능한 의료서비스를 극대화시켜 놓았고 다른 요소들이 이에 결부돼 파급 효과가 증폭됐을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의료비 급증의 가장 큰 동인은 새로운 시술, 약품, 장비 등 새로운 의료기술의 출현이다. 2차 대전 이후 의과학과 의료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인류는 처음으로 의료서비스라는 재화에 대해 사회적 한계를 설정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그러나 인공호흡기와 중환자의학의 발전이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윤리적 딜레마를 야기했다고 해서 그 발전을 가로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의사 탓도 아니다. 일반적인 의료기술의 발전과 그 부작용에 대한 대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동안 보건복지부는 의료기술의 발전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굳건히 하는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보건복지부는 합당한 재정 투자 없이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 강제수가, 강제삭감, 임의비급여 금지 등 4단계의 중층적 규제를 통해 의료체계를 운영해 왔다. 또한 저부담 저급여 체계에서 당연히 파생되는 문제를 의사들의 이기심 탓으로 돌려 왔다. 그 결과 국민은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도 의료기술과 의료산업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투자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의료보험의 진짜 본질은 ‘자율’이다 사회보장제도의 하나인 의료보험 제도의 본질은 자율이다. 의료보험 제도는 조합(보험자)과 의료공급자 사이의 대화를 기반으로 시민사회의 자치능력을 길러주는 장점을 갖고 있다. 반면에 단점도 있다. 상당한 의사소통 비용은 물론 조합의 관리운영비 등이 요구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 건보공단과 심평원 양 기관의 관리운영비는 1조원을 상회하며, 건보공단의 상시직원 수는 2012년 1만2,431명에 달한다. 의료보험 제도는 국가의 일방적 책임 대신에 시민사회의 자율과 책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이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역량이 필요하며 국가(정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보험자와 공급자의 대화와 자율적 해결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건강보험 제도는 자율적 제도가 아니다. 건보공단은 보건복지부의 하명에 따라 조종되는 관료적 조직일 뿐이며 보건복지부가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처럼 우리 건강보험 제도는 시민사회의 자치능력을 길러주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서 막대한 건보공단 운영비만 소요되는 기형적 구조다. 이런 제도를 왜 유지해야 하는가? 가령 건강보험료를 없애고 조세로 통합해 재원을 마련한다면 보험료 징수와 관련된 수많은 민원도 없어지고 거대한 건보공단 조직을 유지하는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의료보험’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조세’로 그 재정의 대부분을 충당하는 국가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구도 속에서 의사와 국민은 항상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민은 항상 보험료 인상을 반대한다. 언론은 국민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한다. 정치권력은 보장성 확대 정책만 남발하고 보험료 인상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정부는 의료공급자를 획일적으로 규제한다. 결국 의사들은 국민의 적이 되는 것이다. 이는 세금으로 의료보장 재정을 충당하는 나라의 현실과 상반되는 측면이 있다. 이들 나라에서 의사들은 국민과 한편이 돼 의료보장 재정 확대를 위해 싸우는 의사, 소위 ‘인술을 베푸는 의사’가 될 수 있다. 의협의 구호, 비전과 일치하는가? 정치의 세계에서 명분은 죽고 사는 문제다. 의료를 둘러싼 정치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돈보다는 제도가 중요하고 제도보다는 명분이 중요하다. 명분이 서면 제도의 변화가 따르고 제도의 변화가 따르면 경제적 이해가 관철되는 법이다. 의협은 원격의료와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을 ‘의료영리화’라 낙인찍고 이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 구호는 국민의 일시적 지지를 얻고 소위 진보세력의 일시적 동조를 얻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구호는 명분이다. 구호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자신들의 비전과도 일치해야 한다. ‘의료영리화 반대’라는 구호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에게 한국 의료체계의 핵심적 문제를 제대로 알릴 수 없다는 점이다. 한정된 보험재정으로 인한 과도한 규제로 인해 의료인의 사명에 충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의협이 의정협상의 가장 큰 성과로 자랑하는 건정심 구조 개편이 의료영리화 반대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언론은 ‘속내는 보험료 인상’이라는 식으로 의료계를 비난하는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은 명분이 좌우하는 정치의 세계에서 역풍을 초래하게 돼 있다. 물론 적지 않은 의사들, 특히 전공의들이 이런 구호에 공감한 것도 사실이다. 가진 것 없이 자신의 노동력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 의사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자본과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는 보건복지부나 의료계가 앞으로 깊이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 전체를 아우르는 명분은 ‘저질 진료 반대’, ‘교과서적 진료의 보장’, ‘국가의 책임 이행’ 등이 됐어야 한다. 의료기술을 발전시키고 제대로 된 진료를 하는 것이 의사의 의무이다. 그런데 국가가 제대로 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의사들의 명분이요 구호가 돼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래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래야 의료계 전체를 아우르며 장기적 전망을 세울 수 있다. 또한 눈앞의 결과가 아니라 장기적 명분을 축적해 나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건정심 개편을 위한 사회적 설득에 있어 요양기관 강제지정제와 관련된 팩트를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사회보험 운영을 위해 의사나 의료기관을 강제로 동원하지 않는다는 사실. 독일, 프랑스, 일본, 미국은 물론 가장 사회주의적인 의료체계를 운영하는 영국도 마찬가지라는 사실. 그 이유는 발전소와 교량이 필수적이라 해도 건설업자를 강제로 동원해서 값을 후려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 잠수함과 무기가 필수적이라 해도 무기제조업자를 강제로 동원해 값을 후려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협의문에 담아 국민에게 알렸어야 한다. 이런 팩트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돼야 보험자와 의료공급자가 동등한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을 주도할 수 있다. 즉 건정심에 대표 몇 명 더 집어넣느냐의 논리가 아니라 보험자와 의료공급자의 협상에 중재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 있는 명분을 마련해 놓는 것이다. 양측의 대표와 양측이 동의하는 제3자가 함께 최종 결정을 내리는 중재제도는 건강보험 수가의 결정 뿐 아니라 건강보험 심사지침의 마련과 해석 및 운영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청년 의사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한국 의료체계의 핵심적 모순은 의료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의료비의 급증이다. 의사의 이기심이나 의료자본의 문제는 부수적 요인일 뿐이다. 따라서 의료기술의 발전을 도모하면서도 의료비의 급증을 막아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런데 보험료 인상을 둘러싼 정치구조에서 의료계는 외톨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의료계 앞에는 두 가지 과제가 놓여 있다. 하나는 건강보험의 재정을 확충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건강보험의 계약과 운영에 중재의 원리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과 한편이 돼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는 싸움을 전개할 수 있는 정치적 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또한 건강보험 수가계약과 운영에 중재라는 합리적 제도의 도입을 위한 명분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의정협상 결과는 위의 과제들과 거리가 멀다. 이는 의협 집행부만의 책임이 아니다. 그것이 의사들의 사회적 역량이다. 이는 그동안 의료계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에 대해서 국민과 함께 고민하고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미래 세대를 짊어질 젊은 의사, 청년 의사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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