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왕진이야기] 2021년 3월 18일, 정유엽 군이 떠난지 1년 되는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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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mindlle) | 작성일 | 2021-03-25 | 조회수 | 6461 |
[발로뛰는 동네의사 야옹선생의 지역사회 진료일지] 청와대까지 행진한 아버지
박지영 민들레 지역사회의료센터장
안녕하세요. 동네의사 야옹선생입니다. 작년 이맘때쯤 대구에서 1차 코로나19 확산으로 정신이 없던 와중에 40도 이상 고열로 병원을 찾았다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결국 폐렴으로 죽음에 이른 정유엽군 을 기억하시는지요. 지난 2월 22일부터 정유엽 군의 부친께서 다시는 정유엽 군과 같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는 사람이 없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영남대병원에서부터 청와대까지 행진에 나섰습니다.
ⓒ박지영 얼마 전인 3월 5일 금요일에 대전을 지나신다는 연락을 접하고, 긴 여정에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진료 차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왕진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사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리고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이라 얼굴 뵙기가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작년 정유엽군이 하늘로 떠날 때의 나이가 겨우 열일곱입니다. 생때같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어찌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요.
아버님은 2년 전 대장암 진단 후 항암치료까지 받으신 상태여서 회복에 무리가 되지는 않을지, 보름 가까이 걸어오시는 터라 발 상태는 괜찮으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함께해 주시는 분들 덕에 얼굴이 많이 상하지는 않으셨고, 다만 발 상태가 좋지 않아 간단히 치료를 해 드리고, 의료공백 해소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간담회에 참여했습니다.
ⓒ박지영
ⓒ박지영 간담회 와중 아버님의 회한 맺힌 말씀들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아들에게 마지막 들었던 말이 ‘아빠, 나 많이 아파’라는 말이었어요."
"아이가 코로나19 때문에 음압병실에 홀로 격리된 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 때 우리가 그 전화를 받지 못했어요. 그 전화가 마지막 전화였는데요. 그것이 너무나 가슴에 사무치게 후회됩니다."
"의료공백 해소와 공공의료를 위해 행동하고 걷는 것만이 떠난 유엽이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걷고 있습니다."
정유엽 군의 사망 초기에는 왜 아이가 제 때 치료받지 못하고 죽었는지 상의할 의사 한 명이 없어 너무나 막막했다고 하십니다. 제대로 의료정보를 얻기 힘들뿐더러 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맥락을 제대로 짚을 수 있는 의사가 없으면 해석하기가 힘들죠.
만약 평소 정유엽 군의 상태를 잘 알고 있고, 당시 증상과 치료에 대해 상의할 수 있는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상황이 어땠을까요.
제가 일하는 민들레 의료사협은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을 통해 장애인과 주치의가 일대일의 관계로 맺고 있습니다. 주치의이기 때문에 그분의 평소 상태를 파악하고 있고, 그분이 아플 때 어떤 연유로 아픈지 누구보다 빨리 알 수가 있습니다.
작년에도 열이 난다고 연락이 와 왕진을 간 경우도 많습니다. 그분의 동선을 훤히 알고 있고, 전화로 증상을 듣고 나면 무슨 이유로 열이 나는지 짐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환자분이 정신이 없고 횡설수설한다고 오셨는데, 주치의가 아닌 저는 이유를 도저히 알수 없어 당장 응급실로 가셔야겠다고 했었죠. 그런데, 주치의이신 다른 선생님이 보시고는 약물 부작용임을 단번에 알아보시고 조치를 취해 하루 만에 좋아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작년 한해 코로나 19 상황으로, 또 한편에서는 의사 파업 상황으로 생긴 의료공백 때문에 제때 치료받지 못한 분들이 분명히 계십니다. 열이 나면 코로나 19가 아닌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치료가 지연되기 십상이었고, 환자들도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로 아픔을 참고 견디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병을 키워 응급실로 가는 경우도 많았지요. 의사 파업 시기에는 병원 문 앞까지 갔다가 파업으로 되돌아오거나 응급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구급차가 병원을 전전해야 했던 분도 봤습니다.
공공의료도 의료공백 해소도 결국 모든 환자가 최선의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의 치료는 환자를 잘 알고, 제대로 치료하고자 하는 의료진에게서 나오고, 그런 의료진을 키우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공공의료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요즘 즐겨보는 미국 의학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은 뉴욕시의 공공병원을 배경으로 그곳 의료진들이 환자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뉴 암스테르담> 의 진료팀장인 의사 맥스 굿윈은 빠듯한 예산으로 경영문제에 시달리면서도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는 것’을 최우선 원칙으로 지켰습니다. 그 원칙 때문에 그곳 의사와 의료진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며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니 공공의료의 '형식' 뿐 아니라 공공병원이 공적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치료받을 수 있었음에도 치료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내용'도 같이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2021년 3월 18일은 정유엽 군이 하늘로 떠나고 1년이 되는 날입니다.
ⓒ박지영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우리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됩니다. 정유엽 군은 떠났지만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첫째, 참여연대에서 진행 중인 캠페인에 동참해주세요. (바로가기 :정유엽과 함께하는 #공공의료 한걸음 더)
둘째, 청와대 청원에 참여해주세요. (바로가기 : 국민청원)
마지막으로 위 상황을 개인 SNS 나 커뮤니티에 공유해주세요.
우리를 대신해 걷고 계신 정유엽군 아버님의 걸음에 힘을 실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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