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어느 봄날 나는 정원에서 우연히 나비의 누에고치를 발견했다.
다가가서 보니 고치의 한쪽에 작은 구멍이 뚫리면서
나비가 막 빠져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나비는 아주 천천히 그 작은 입으로
고치집을 헤치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러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온기를 받아 나비가 빨리 나올 수 있도록
누에고치에 대고 입김을 불어주었다.
나비는 갑자기 따뜻해진 기운을 받아
금방 고치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나오자마자 내 손바닥 위에서 죽고 말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자서전 중에서
엮은이의 말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느 부족 마을에는 생일을 축하하는 문화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네가 노력한 게 아니라 저절로 먹어지는 것이 나이인데 축하할 이유가 없다”는군요. 저절로 먹어지는 것이 나이라지만, 또한 저절로 되지 않는 것이 어른인 것 같습니다.
기획을 엮어가던 중에 한 독자에게서 메일을 받았습니다.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사회생활도 육아도 다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과연 어른인가 하는 회의가 드는 요즘이에요.” 하며 말을 건네 오셨는데 마감 중인 기획 주제와 맞물리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모두들 그럭저럭 살아가고는 있지만 어른이 무엇인지,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은 지금 어른으로 살고 있는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더욱 필요한 때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민들레 터줏대감인 고양이 꽃네는 바람과 햇볕을 좋아하는데,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어서 날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빠져나가 창틀에서 바람을 쏘이곤 합니다. 제 자리가 창가라서 나가고 싶어할 때마다 일일이 창문을 열어주고, 요즘 같은 날씨엔 들어올 때까지 문 열어놓고 기다리며 곱은 손을 호호 불면서 일을 하는데 이것 참 춥고 성가신 일이다 싶다가도, 문득 생각나는 것이 “말 못하는 짐승에게 그러는 거 아니다” 하시던 어릴 적 동네 어르신들 말입니다. 집에 온 손님은 그냥 보내는 게 아니라며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하던 모습이나, 동네 공용우물을 쓰고 나면(네, 대단한 깡촌에 살았습니다) 뒷사람을 생각해 한 양동이 물을 길어놓던 어른들 모습이 지금도 제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면, 그냥 그렇게 삶의 지혜를 몸소 보여주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요즘 성인기가 되어서도 아이처럼 행동하는 ‘어른아이’들이 많아졌다지만 취직이나 결혼, 출산 같은 것이 인간 구실의 완결 요소는 아닐진대, 사람을 스스로 서게 하고 온전히 살게 하는 교육은 어떤 것인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올해의 마지막 『민들레』에는 특별히 아이들 이야기가 많이 담겼습니다. 환자 취급을 받고 있는 중2들을 위한 변명, 눈칫밥 속에서도 야무지게 제 삶을 챙겨가고 있는 공부방 아이, 돌봄교실에 갇혀 시간을 견디는 초등학생들의 안쓰런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막장인생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다는 열아홉 친구의 성장기나 휴학을 하고 방황하던 대안학교 학생의 , 그리고 이런 친구들에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길을 고민하는 연중기획 <에프터스콜레, 탈주의 서곡>도 이어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얼마 후면 또 나이 한 살을 보태게 되었습니다. 미성숙한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아이들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지 경험한 한 해지요. 지나는 세월을 비껴갈 수 없으니 몸은 뻣뻣해지더라도, 정신만은 제 안에 갇히지 않도록 말랑말랑하고 유연하게 가꾸어가는 일이 지혜로운 어른이 되는 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2014년 12월, 장희숙 |
목차
표지 이야기 005 사랑한다는 것은
엮은이의 말 006 저절로 먹어지는 것이 나이라지만
특집_ 어른이 되는 길
016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 김보람
022 사람은 누구나 자기 길을 품고 태어난다 | 김종률
030 고군분투 엄마 성장기 | 김지혜
038 나잇값은 얼마일까 | 장희숙
단상 046 우리는 저마다 고유한 별이다 | 현병호
연중기획 054 대안교육, 지금의 과제는 무엇일까 | 좌담
066 에프터스콜레, 탈주의 서곡 | 안성균
잊을 수 없는, 세월 078 잠들지 못한 세월호 아이들의 꿈을 잇다 | 장영승
교사 일기 086 돌봄의 시간을 견디는 아이들 | 양영희
살며 배우며 094 꼬인 인생은 풀면서 가고 | 성태숙
논단 102 늦춰지는 성인기, 위기의 20대 |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톺아보기 112 자유학기제, 중학생들의 쉴 틈이 될 수 있을까 | 김상태
만남 119 길 위의 학교, 로드스꼴라 | 편집실
세계의 대안대학 128 유목민 유전자로 길을 열어가다 | 임고운
또 하나의 창 137 대안적 학습 환경을 창조하기 | 엘리엇 워셔 외
열린 마당 151 대안학교 휴학이 가르쳐준 것들 | 유준상
158 방목도 교육일까 | 김정민
서평 164 성장을 위한 서울댁의 꿈 사용법 | 박지나
소자보 173
주말 로드스꼴라 1기생 모집 / 교육공동체 나다 인문학 특강 / 잡지 <대졸>을 아시나요?
늦봄문익환학교, 성미산학교, 느티울행복한학교, 배움터길, 아시아
평화교, 실상사작은학교, 파지스쿨 신입생 모집 / 간디공동체 겨울계절학교, 지리산
어린이겨울학교 / 유목민 유전자로 길을 찾는 <휴먼 브랜딩 워크숍> / 2015년
절기살이 절기달력 /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 교사 모집
065 교육 포럼 _넘나들며 배우기 172 새로 나온 책 176 독자 모임
*오시는 길